이슈와 논단

  • 제9호 2024.04.30.
안동대학교 민속학연구소 웹진 공생공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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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에 들어서던 시기 나는 수도권과 대도시에서의 삶을 마감했다. 아니 그땐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당시 나는 직장과 가족, 건강 모두를 한꺼번에 잃어 삶의 기반이 붕괴된 상태였다. 많은 이들이 생태주의를 실천하거나 자급자족 생활을 시도하기 위해, 또는 공동체적인 삶을 지향해 귀농귀촌을 결심하지만 내게 시골살이는 그저 살기 위한 도피에 가까웠다. 그래서 처음 농촌으로 이주했을 때 아무런 계획도 대책도 없었다.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기에 호기롭게 준비한 농사일을 대실패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먹고 살려고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하루살이 같은 일에 치이며 자신에 대한 회의가 더 짙어졌다. 도시에서 농촌으로 공간만 이동했지, 위태로운 채 제자리걸음인 삶에 어떤 재미나 의미도 건질 수 없었다. 하지만 사람이 가진 게 별로 없으면 더 이상 실패할 건더기가 없어 오히려 좀 용감해지는 측면이 있다고 나는 느낀다. 생계 때문에 억지로 하던 일을 마지막으로 관두며 나는 여기까지 와서 더 망할 것도 없으니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고 결심했다.

당시 나는 인생을 회복하고자 온 시골에서 왜 여전히 도시에 살 때의 욕망과 습을 버리지 못할까?’ 고민하며 진짜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자신과 대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창조적인 일, 글 쓰는 일을 하고 싶다는 답을 스스로에게서 찾았고 어느 날 그런 일들을 하기 위한 간판으로 문화기획달이라는 이름을 지었다.(내 별칭의 앞 글자를 딴 것이다) 그리고 문화기획달을 통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로 잡지를 떠올렸다.

어릴 때부터 막연히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을 가져왔고 20대에는 잡지 만드는 일에 관심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걸 해볼 기회는 없었다. 글쓰기를 시작한다 해도 혼자서는 어떻게 쓰고 누구에게 보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같이 쓰는 사람들을 만들기 위해 과거의 꿈을 다시 꺼내 잡지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남원시 산내면 마을 여자들과 함께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당시 산내면에는 내가 1년 가까이 활동했던 마을신문도 있었고, 어떤 면에서는 도시보다 문화 인프라가 풍성한, 공동체의 지형이 활발한 동네라 그런 상상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지리산에서 글 쓰는 여자들의 줄임말로 <지글스>라는 잡지 이름을 붙이고(난 뭘 하든 작명부터 시작한다), “생활밀착형 B급 교양문예지 계간 <지글스>”A4 1쪽짜리 기획서이자 광고전단을 만들었다. 그리고 마치 접선하듯 만나는 마을 여자마다 전단을 슬쩍 보여주며 같이 하지 않겠냐고 꼬드기기 시작했다. 

 

 

책이나 잡지 만드는 일에 대한 경험도 전무하고 제작비도 0원인데 무슨 배짱이나 치기였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운이 좋으면 하고, 안 되면 말고의 느슨한 마인드였다. 내 인생에서 더 실패하거나 손해볼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좋아하는 일을 새롭게 시도해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고, 어떤 열정이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그 이후로도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마다 나는 안 되면 말고라고 속으로 읊조리곤 한다.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일로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기에 가볍게 받아안고 쉽게 좌절하지 않기 위함이다.

글쓰기나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사람, 글재주가 좋다고 마을에 알려진 사람, 과거에 출판사나 잡지사에서 일해본 사람 등이 하나둘 모이고 서로의 지인을 소개해 주기도 하며 <지글스> 초기 멤버는 스무 명에 달했다. 십시일반 회비를 모아 제작비에 보탰다. 필진 중 농사짓는 사람들은 자신이 키운 농산물도 내놓았는데, 내가 그것을 도시의 친구들에게 팔아 제작비에 충당했다. 농산물을 구입한 도시 친구들에게는 잡지가 나오면 보내주겠다 약속해 어쩌다 보니 독자도 미리 모집한 셈이 되었다.

그러니까 필진들은 원고료를 받은 것이 아니라 거꾸로 지면세를 내고 자신의 글을 실은 것이다. 감격스러운 <지글스> 첫 호가 나오고 책 나눔을 하며 서로 소회도 나누고자 필진들과 정식 모임을 가졌다. 사실 나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잡지를 기획한 것이 아니라 계속 낼지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필진들이 한 번 하고 없어지기에 아까우니 또 내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고, 하다 보니 4년이나 잡지를 발행했다. 나중엔 타지의 독자들 요청에 의해 정기구독자가 생겼고, 전국의 독립서점에서 판매되었다.(나도 일이 그렇게 커질 줄 몰랐다)

지리산 시골 마을에 사는 여자들이 독립잡지를 만드는 취지에 공감해서인지, <지글스>가 나온 내내 많은 이들이 도움을 주었다. <지글스> 필진의 지인은 책 디자인을 무료로 맡아주었고, 인쇄소 사장님은 정기구독자 수십 명을 모아주기도 했다. <지글스>는 표지 촬영부터 기획, 교정과 편집까지 모두 필진들의 손으로 만들어냈다. 나는 함께 작업하는 동안 어쩌면 이렇게 재능 있는 여자들이 많을까 감탄하기도 하고, 그동안 이들의 능력이 왜 마을에서 발견되거나 발휘되지 못했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우리의 재능뿐 아니라 각자 가진 내밀한 생각과 감정, 꿈이 책 한 권에 모여 계절마다 펼쳐지고 세상에 나온 과정은 모두에게 소중한 경험으로 남아 있다.

<지글스> 필진들이 왜 그렇게 오래 자발적으로 참여했을까 생각해보면, 우리가 한 마을에 같이 살아가도 막상 자기 이야기를 할 창구나 기회가 별로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특히 여성 개인으로서는 더더욱 그렇다. 글쓰기는 자기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좁은 관계망을 가진 지역사회에서 공개적인 지면을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 용기가 쌓인 결과인지, 필진들은 <지글스>를 시작한 지 일 년 반쯤 흘렀을 때 모인 자리에서 처음 마을 내 성차별과 성희롱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만 겪은 일이 아니고 모두가 쉬쉬하던 문제임을 함께 깨닫자 <지글스> 필진들은 문화기획달이 마을에서 페미니즘 캠페인을 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그 일을 계기로 문화기획달은 문화예술단체에서 여성주의 문화단체로 조직으로서의 정체성까지 바뀌게 된다.

우리가 동시에 각성했던 그 여름밤 작은 방의 공기가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데, 그때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도시에서 그만둔 여성주의 활동을 뜻밖에 농촌에서 다시 시작하게 된다는 것이 신기하면서 마음이 부풀기도 했고, 한편 모두가 유사가족처럼 얽힌 공동체에 이것이 어떤 의미가 될지 짐작할 수 없었다. 산내면이 아무리 공동체 활동이 활발한 곳이어도 그때까진 젠더 이슈에 대해 공론화되지 않았고, 농촌 특유의 가부장적인 문화와 성역할 고정관념이 일상에 흐르고 있음을 나는 곧잘 느꼈다.

<지글스>를 만드는 동안 나는 특히 주변 남자들로부터 왜 여자들끼리 하냐?”는 타박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들었다. 처음엔 여성들의 글쓰기가 갖는 상징이나 이 활동의 의미에 대해 논리적으로, 친절히 설명하려 애썼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게 이것을 답하거나 상대를 설득할 의무도 없고, 애초에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마을에는 공동육아 모임, 반찬봉사 모임, 바느질 모임 등 여자들끼리 하는 동아리가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아무도 다른 모임들에는 우리에게처럼 왜 여자들끼리라며 못마땅한 눈초리를 보내지 않았다. 마을회의나 운동경기가 남성들로만 구성됐을 때 누구도 왜 남자들끼리라고 의문을 품거나 비난하지 않았다. “왜 여자들끼리앞에는 감히 우리(남성)의 허락 없이라는 말이 감춰져 있었다. 여성이 역할에서 벗어나 자기 고유의 언어를 가졌을 때 가지는 힘과 변화를 그들은 우리보다 먼저 본능적으로 느꼈던 것이다.

 

 

<지글스> 필진들이 마을 페미니즘 캠페인을 제안했을 무렵, 문화기획달은 나 외에도 <지글스>를 함께 만든 다른 멤버 두 명이 동료 활동가로 단체 운영에 참여했다. 처음 이름만 존재했던 1인기획사가 단체가 되고 활동가가 여럿이 되면서 사업도 늘어나고 공간이 절실했다. 함께 고민 끝에 그해 가을 활동 공간을 빌려 지리산 마고여신 이름을 따 살롱드마고를 열었다. 당장 한달치 월세밖에 없던 살롱드마고를 시작했을 때 <지글스> 필진들이 자기 일처럼 나서 집에서 안 쓰는 숟가락 하나까지 탈탈 가져와 텅 비어 있던 집에 기본적인 살림살이를 마련해주었다.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가을엔 누군가 막 수확한 쌀을, 겨울엔 다른 누군가 집에서 깎은 곶감을 가져왔다. 나는 여자들과 함께 활동하며 그들이 보여주는 세심함과 확장성이 놀라웠다. 우리는 단순히 수고와 고마움을 나눈 것이 아니라, 마을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살 수 있도록 서로가 지지하고 보살펴줬다는 생각이 든다. <지글스>와 문화기획달, 살롱드마고는 산내마을 여자들이 물을 주고 함께 가꾸어 성장시킨 것이다. 그것은 여성인 우리 자신뿐 아니라 성평등한 문화로 향하는 마을 공동체의 성장까지 가능하게 만들었다.

아마도 농촌 지역에서 본격적인 페미니즘 캠페인으로 처음 시도된 문화기획달의 2016농촌 성문화 다시보기프로젝트는 마을에 큰 임팩트를 남겼다. 우리는 마을 여성들을 대상으로 성차별, 성폭력 경험을 조사했고 수집한 사례로 자료집을 만들어 마을 곳곳에 배포했다. 또 페미니스트저널 일다를 통해 온라인에 연속기사를 써 우리의 활동을 전국에 공유했다. 캠페인 과정에서 마을회관에서의 일 나눔부터 술자리에서의 농담까지 문제제기되자 마을은 여기저기 들썩이는 듯했다. 한동안 공격적인 소문이 들려오거나 개인적인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해 문화기획달 활동가들은 같이 이사를 갈까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후 마을회의에서 공론화의 장을 만들자는 제안이 있었고, 우리는 그 자리를 통해 처음 주민 대상 페미니즘 특강을 열면서 캠페인 결과에 대해 토론하게 되었다. 행사를 준비하며 보이지 않는 두려움에 시달렸던 활동가들은 막상 현장에 모인 수많은 마을 여성들을 마주하고 예기치 않았던 힘과 용기를 얻었다. 캠페인의 취지에 공감하고 지지해주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으며 우리는 이곳에 계속 살아갈 수 있겠다는 희망을 본 것이다. 그후 문화기획달에서는 모든 사업에 페미니즘적인 색깔을 녹이며 젠더 이슈를 더욱 활발하게 끌어갔고, 성평등 교육도 함께하게 되었다. 산내마을에서는 성차별과 성폭력 문제를 더욱 민감하게 보고 대응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갔고, 몇 년 후엔 성다양성 축제가 열리는 등 새로운 시도가 계속되는 중이다.

 

 

2020년 문화기획달 활동가들은 협동조합마고를 새로 꾸리면서 조직을 전환하고 활동지를 남원시내로 옮겼다. 공간 살롱드마고는 지역서점이자 페미니즘 문화공간으로 운영하면서 다시 새로운 일들을 도모하며 실험하고 있다. 이제는 마을 단위가 아니라 남원을 거점으로 지역주민과 더불어 주변 다른 도시의 사람들, 특히 여성들과 관계 맺으며 다양한 활동을 진행한다. 그중에서도 글쓰기 모임은 매년 큰 호응을 얻고 있는데, 페미니즘을 내걸지 않아도 여성들의 말과 글 속에 드러나는 자기서사가 매번 페미니즘적인 메시지로 귀결되는 것은 인상적인 장면이다. 살롱드마고에서 모인 여성들의 글은 작은 책으로, 낭독회의 작품으로 전파되고 있다. 작년에는 글쓰기 모임에서 낸 두 작품이 전북양성평등 글쓰기 공모전 수상작이 되기도 했다.

살롱드마고에 찾아오는 여성들은 한목소리로 이곳에서는 안전하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그 안전함이란 신변의 위협이나 사고의 위험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여기선 어떤 모습의 자신도 받아들여질 거라는 신뢰가 생기고, 그래서 나의 취약함을 드러낼 수 있다는 의미에 가깝다. 글쓰기란 나의 취약함이 얼마나 잘 묻어날 수 있는 행위인가. 살롱드마고 글쓰기 모임에서는 취약함이 드러난 글이 공유될 때 그것을 진심으로 경청하고, 쓴 이의 용기에 감사하다는 소감이 오가곤 한다. 내면에서 우러난 용기는 곁에 있는 이들에게 전파되기 때문이다. 지역에서 여성으로서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곁에 살아가는 여성들로부터 얻었다. 이 글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용기가 되길 빈다. 언젠가는 우리가 용기내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세상이 오길 기다리며, 살롱드마고는 오늘도 문을 열고 우리는 같이 글을 쓰고 읽는다.

 

 

 *원고 관련 온라인 컨텐츠 참조

- 살롱드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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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기획달 블로그 blog.naver.com/mooncult

- 지글스 페이스북 facebook.com/zigls

- 페미니스트저널일다농촌 페미니즘 캠페인 기사 ildaro.com/7497

 

이유진(달리) - 살롱드마고 공동운영자    
전북 남원에서 지역서점&페미니즘문화지구 ‘살롱드마고’를 공동운영 하며 젠더교육 강사, 문화기획자, 글쓰기 안내자로 활동 중이다. 지역독립잡지 <지글스>의 편집장이었고 책 <몸이 말하고 나는 쓴다>와 <젠더 수업 리포트>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