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밖에서 울타리를 만드는 돌봄 공동체
‘돌봄(care)’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고령화, 인구 절벽 등 신사회적 위기에 대한 해법을 찾지 못한 사이 팬데믹 국면과 수많은 재난을 거치면서 돌봄이 주요한 의제로 떠올랐다. 과거에 돌봄이 가족 내 어머니가 수행하는 모성 실천(mothering)과 동의어로 쓰였다면, 우리 사회에 만연한 돌봄 위기는 돌봄이 혈연에 기초한 관계 안에서만 이뤄져야 한다는 통념을 허물었다. ‘우리 가족’의 애착에서 형성되는 좁은 의미의 돌봄이나 여성의 보살핌 영역으로 주변화되는 돌봄을 넘어 ‘나와 같은 타인’의 안위를 염려하고 공거의 책임을 나눠 갖는 사회적 돌봄이 삶을 지탱하는 역량으로 조명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돌봄은 제도화된 서비스가 아닌 “우리가 일상에서 맺는 관계의 이름”이며, ‘취약성(vulnerability)’과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e)’을 존재 조건으로 긍정하는 사회 전환의 원리이자 윤리적 감각으로 의미가 확장된다.
사회적 돌봄을 강조하는 이들은 다양한 돌봄 모델을 모색해왔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연구단체 ‘더 케어 콜렉티브(The Care Collective)’는 ‘보편적 돌봄(universal care)’과 ‘난잡한 돌봄(promiscuous care)’을 통해 다른 삶을 구상하는 정치적 비전을 제시한다. 보편적 돌봄은 삶의 모든 수준에서 돌봄을 우선시하고 중심에 놓는 사회적 이상이다. 이 모델은 지역사회, 국가, 지구 전체에서 형성되는 대안적 친밀성과 돌봄 네트워크를 관계의 기초 단위로 삼는다. 난잡한 돌봄은 보다 실험적이고 확장적인 방법으로 서로 다른 존재를 돌보고 돌봄을 받는 관계들에 집중하는 모델이다. 난잡하게 섞인 관계, 즉 혈연이나 동질성에 기반하지 않은 구성원을 차별 없이 환대하고 연대하며 유대를 실천하는, 모두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돌봄 비전이다.
한편 초고속 인터넷의 보급과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보편적이고 난잡한 돌봄을 실천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인터넷에 펼쳐진 그물망에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놓고,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보살피며 공생의 관계를 형성하는 지대를 확장해 가는 중이다. 특히 신체적 제약과 물리적 한계로 서로에게 닿을 수 없었던 장애인들이 유튜브 브이로그(vlog)로 연결돼 교류를 확대해가는 현상은 취약성, 상호의존성, 돌봄의 의미를 새롭게 사유할 수 있는 좋은 예가 된다. 이 글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장애 브이로그가 취약한 몸들이 수평적으로 관계 맺고 대화에 참여하는 ‘이야기판’이자 돌봄 윤리의 원천이 될 수 있음을 논하고자 한다.
출처 <여성신문>(원문링크)
취약한 몸들의 신체적 공명과 돌봄 네트워크
레거시 미디어에서 과소 재현의 대상이었던 장애인이 유튜브를 중심으로 이야기 주체로 나선 것은 최근의 현상이다. 장애인들은 의료 정보나 통념화된 장애가 아닌, 그것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체현(embodied)의 경험과 사사로운 일상, 감정을 브이로그로 남기기 시작했다. 주목해야할 것은, 개인의 미시 삶을 기록하기 위해 제작된 브이로그가 정상성으로부터 소외된 취약한 몸들을 연결하는 커뮤니티로 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박탈감과 고립감을 느꼈던 장애인들은 서로의 브이로그를 시청하며 미지의 동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공통감과 장애라는 동질감 내부의 다양한 위치와 차이에 눈을 뜨게 된다. 가령 키오스크가 농인에게 대면 주문의 곤혹스러움을 덜어주는 유용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되는 반면, 화면과 버튼을 찾기 어려운 시각 장애인에게 키오스크는 갑작스럽게 등장한 장벽이다. 팬데믹 이후 은행의 비대면 업무가 늘자 음성통화가 어려운 청각장애인은 서비스 이용이 제한되었고, 시각장애인은 휴대전화의 보안키 입력에 곤란을 겪는다. 자막 없는 영화는 청각장애인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은 다양한 좌석 선택권을 누리지 못한다. 장애 브이로거들은 여러 영역에서 미스핏(misfit)된 일상을 영상으로 공유하면서 제각기 다른 장애 경험을 마주하고 서로의 취약성을 이해하게 된다,
브이로그라는 이야기판을 통해 친밀감을 형성한 장애인들은 바깥으로 나와 서로의 몸을 연결하며 취약성을 보완해나간다. 뇌병변장애인 구르님, 시각장애인 우령, 농인 하개월의 합동 방송은 취약성이 돌봄을 추동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보여준다. 세 사람은 우령의 안내견의 예방 접종을 위해 길을 나선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구르님은 우령의 눈을 대신해 길을 안내하고, 우령은 농인 하개월 대신 주변의 소리를 들으며 위험 상황을 살핀다. 하개월은 손이 불편하고, 앞이 보이지 않아 스마트폰을 들고 촬영하기 어려운 구르님과 우령을 도와 영상을 기록한다. 서로의 취약성이 이들에게는 기댈 수 있는 신체가 되고 미스핏된 환경은 상호 돌봄을 위한 발판이 된다. 이 외에도 시각장애인인 한솔이 지체장애인 한나와 서로의 눈과 손이 되어 식당 앞 작은 문턱을 넘어서고 키오스크의 주문을 돕는다. 시각장애인 우령에게 농인 하개월은 몸을 밀착해 춤과 수어를 가르친다. 누군가는 도움을 주고 또 누군가는 도움을 받는 모습이 브이로그를 통해 여기저기에 펼쳐진다.
연결된 신체들이 자아내는 협업을 보며 우리는 취약성과 상호의존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할 수 있다. 취약성은 약함, 무능력함, 행동과 힘의 결여 등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며 특히 장애인에게는 불능의 표식으로 연동된다. 따라서 장애는 언제나 교정의 대상이고 장애인들은 정상으로 도달하기 위해 신체를 개조하거나 치료를 통해 취약성을 극복할 것을 강요받는다. 그러나 장애 브이로거들에게 취약성은 넘어서야 할 한계나 약점이 아니다. 이들은 각자의 취약성과 상호의존성을 인식하면서도, 때때로 그 불완전함을 내가 채워줄 수 있다는 잠재적 역량을 발견한다. 장애와 무능함을, 의존을 나약하고 병적인 것으로 연결하는 왜곡된 시각을 거두고, 취약한 신체들이 협력과 공생을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는 것이다.
취약성은 비단 장애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생명 자체와 더불어 등장하는” 인간 공동 토대이다. 자족적으로 완전해 보이는 사람도 삶의 다양한 순간과 수많은 경우에 타인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간다. 아이는 어른의 돌봄으로 성장하며, 어른이 되어서도 사회적 관계와 주변 환경, 시설, 제도에 도움을 받는다. 따라서 취약성은 극복해야 할 수치나 부정적인 상황이 아니라 우리가 살면서 도움을 받는 물질적 조건들을 연결해주는 끈이다. 취약성은 너와 내가 살만한 삶 조건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는 돌봄의 책임을 정초하는 정치적, 윤리적 자원이다.
우리는 모두 취약하고 의존적이라는 조건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완전한 자립과 독립은 장애인에게 중요한 원칙이자 쟁취해야 할 목표로 제시되어왔다. 장애인은 홀로서기를 위해 신체적·사회적 의존을 최소한으로 하며 여러 사회적 역할을 다할 수 있는 주체가 되도록 요구받는다. 자율성(autonomy)과 독립성(independence)이 이상적인 자아상으로 숭배될 때, 상호의존과 돌봄을 필요로 하는 이들과 장애인을 열등한 지위로 전락시킨다. 하지만 장애 브이로거들에게 합동 방송은 자율과 독립이라는 높은 장벽을 깨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들은 누구나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며, 연결된 몸들의 잠재력을 통해 서로를 지탱하는 관계가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다만 이들 사이의 취약성에 대한 인정은 인간 주체가 가진 자율성의 가치를 전적으로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결코 자기완결적일 수 없고 타자와의 필연적인 상호의존을 통해 ‘관계적 주체(relational subjects)’로 거듭날 수 있음을 보여내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돌봄의 의미도 새로 쓰인다. 기존의 돌봄 담론은 기능적이고 온전한 몸을 가진 이를 돌봄 제공자(care-giver)로, 장애인은 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돌봄 수혜자(care-receiver)로 위치시켰다. 이러한 권력의 동학은 장애인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소거해버린다. 그러나 브이로그를 매개로 이어지는 장애인들의 만남은 서로를 돌봄 속에 갇힌 존재로 만들지 않는다. 이들은 자립해 있을 때보다 서로 연결되었을 때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장애 브이로거들에게 합방은 돌봄의 과정을 평등하게 분담하며, 정상 신체의 통치 매커니즘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신체성을 구축하는 ‘정치적 돌봄(caring with)’의 연결점이 되어준다. 장애 브이로거들은 고립된 채 개인적으로 취약성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취약성과 상호의존성을 인식하면서도 때때로 그 불완전함을 내가 채워줄 수 있고, 혹은 내가 의존할 수도 있음을 발견해나간다. 이는 평등한 차이가 상호 존중으로 발전하고 보살핌과 의존이 연대의 기반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취약성과 상호의존성을 인정하면 우리는 새로운 돌봄에 대한 상상을 발전시킬 수 있다.
누구나 서로를 돌보는 난잡한 돌봄 세계를 꿈꾸며
가상공간에 만들어진 이야기판에는 장애 브이로거뿐 아니라 그의 삶을 궁금해하고 언제든 그의 이야기를 들어줄 시청공동체가 돌봄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장애 브이로거가 일상화된 차별에 상처받은 경험을 고백할 때면 시청자들은 그 고백에 성실하게 응답하며 그 아픔을 함께 짊어지고자 한다. 브이로거의 방송 주기가 뜸해지는 동안에도 시청자들은 댓글과 댓글의 꼬리를 물며 안부를 묻고, 끝없이 이야기 실타래를 이어간다. 이 이야기판에서 수행되는 돌봄은 직접 누군가를 보살피고 다른 사람에게 육체적·심리적 도움을 제공하는 일을 넘어선다. 물론 시설이나 병원 등에서 수행되는 직접적인 돌봄 또한 취약한 몸들에게 필요하지만, 브이로그를 매개로 실천되는 돌봄은 제도적인 차원을 넘어 관계적이고 정동적(affective)이다. 장애 브이로거와 시청공동체는 물리적으로 인접해 있지 않지만 서로를 끊임없이 돌보며 혈연의 관계를 초월하는 대안적 친밀성과 난잡한 돌봄 세계를 구축해나간다.
요컨대 돌봄은 여성성에 기대는 성역할이나 추상화된 도덕적 원리가 아니다. 동등하게 취약한 사람들 사이의 말 걸기, 서로를 환대하며 이야기를 경청하는 윤리적 듣기, 책임 있는 응답에서 구체화되는 실천이다. 유튜브 브이로그는 이 대화적 관계를 견인하는 훌륭한 이야기판이다. 장애 브이로그는 원거리의 취약한 몸들을 연결하며 더 나은 정치와 돌봄 윤리를 모색할 수 있도록 심연의 다리를 놓아준다. 장애 브이로그는 단순히 디지털화된 구술(oral) 일기장이 아니다. 개인의 차이와 다원성을 장애인이라는 범주로 매몰시키지 않으면서 개별의 취약성을 사회적 차원에서 재매개하는 공적 공간이다. 느슨하면서도 끈끈한 연대로 이어진 취약한 몸들의 이야기 타래는 ‘함께 돌봄’의 네트워크에 역동성을 불어 넣고 있다.
참고문헌
더 케어 콜렉티브 지음, 전소영 옮김, <돌봄 선언: 상호의존의 정치학>, 니케북스, 2021(2020).
조기현·홍종원, <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 한겨레출판사, 2024.
Catriona Mackenzie, Wendy Rogers and Susan Dodds, eds., Vulnerability: New Essays in Ethics and Feminist Philosophy, Oxford University Press, 2013.
Joan Tronto, Caring Democracy: Markets, Equality, and Justice, New York University Press, 2013.
Joseph M. Schwartz, The Future Of Democratic Equality Rebuilding Social Solidarity in a Fragmented America, Routledge, 2009
Judith Butler, Precarious Life, Verso, 2004.
Judith Butler, Notes toward a Performative Theory of Assembly, Harvard University Press, 2015.
이해수 - 고려대학교 BK21 미디어학교육연구단 연구교수
고려대학교 BK21 미디어학교육연구단 연구교수. 비판적 문화이론 저널 <문화/과학> 편집위원이기도 하다. 미디어와 공간, 몸, 기억 등에 관심을 두고 연구와 저술 활동을 해오고 있다.